01. what
02. how
03. storytelling
04. prototyping 上
05. prototyping 下
대부분의 경우, 그 어떤 것이든 '만든다'라는 것은 '무엇을(what)', '어떻게(how)'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시작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에게 그 무엇을 어떤 재미의 유저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으로 전달할 것인가로 귀결되게 된다. 이러한 what, how, UX에 대해 분명한 의도를 갖고 정리된 형태가 '게임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의가 매우 간결하고 강력하게 그 일관된 특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로써 하나의 '디렉션 비전' 즉, 프로젝트의 청사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하나의 기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정리된다면 그로써 하나의 '기획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기획은 크게 시스템이나 메커니즘, 로직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 기획과, 스토리와 환경, 레벨을 만들기 위한 컨텐츠 기획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획서를 작성한다면, 그 기획서는 플레이어와 개발자 양쪽을 모두 고려해 작성되어야 한다. 즉,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들 것인가의 관점에서의 UX가 시뮬레이션 되어야 하고, 그를 게임에 구현할 개발자가 기획 의도 혹은 목표를 명확히 이해시킬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UX가 정의되고 설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하기'에 있어 어떻게 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협업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진행해 나가는지에 대해 필자의 경험과 시행착오의 이야기들로 본 연재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여기서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 비전을 만드는 부분은 디렉터(혹은 PD)의 고유 영역에 속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개발자라면 누구든 (꼭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할 수 있다고 보기에 넓은 관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이 내용들은 모두 필자의 주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업계 표준(그런게 있다면;;)이나 수많은 다른 방법들과 접근을 달리할 수 있기에 절대적으로 좋은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두었으면 한다.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 비전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무엇을(what)'에 해당하는, 개발팀이 모두 같은 꿈을 꾸며 달려가야 할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what을 정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보면 애매모호한 경우에 부딪힐 때가 있다. 일단 다음의 예를 보자.
어떻게 보자면 위와 같은 기술적 정의로 구성된 비전도 what에 포괄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개발팀에서는 위의 내용만으로도 분명 그 목표점이 명확하게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ping이나 network latency 등의 이유로 매우 빠르게 실시간 동기화 되는 것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예측 판정해 전투 공방하게 만드는 논타게팅 액션이라는 점은 분명 강조하고 자랑할만한 강점이자 특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런 what만으로도 분명 그 안의 how를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애매모호하다. 이는 위에 서술된 특징이 유저경험을 파악하기엔 너무나도 개발자만의 관점에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발자라 해도 게임의 스토리라이터나 그래픽디자이너가 공감하고 따르기엔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에, 역으로 보자면 던전앤파이터, 테라, 드래곤네스트 등 그 어떤 게임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때문에 이렇게 광범위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정의는 프로젝트 전체의 비전으로 가져가기엔 좀 무리가 있다. 물론 게임이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에 마케팅 포인트로써 강조할만한 특징적 요소일 수는 있겠지만, 처음 게임을 만들기 위한 컨셉 기획 방법으로 what을 정의하는데 있어서는 적합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동일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혹은 '구체화 된 심상의' 방법으로써 레퍼런스형 하이컨셉을 사용해 들어가는 경우가 더 성공적일 때도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뭔가 뜬금없는 조합인듯 하지만, 위의 정의는 2000년부터 몇년동안 필자가 참여했던 MMORPG의 최초 개발 시작 당시 팀 내부에서 공유하던 정의의 방법이였다. 당시 개발팀은 악튜러스라는 패키지 RPG 게임을 막 끝낸 상태였지만 온라인 게임을 개발해 본 경험자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기획팀 내 리니지 하드코어 유저가 한명 있긴 했지만 그나마 팀에서 가장 많이 하던 게임이 디아블로2였기 때문에 위와 같이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하이컨셉화 된 접근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악튜러스의 그래픽으로 디아블로 같은 멀티플레이/파티 전투를 하며, 하늘사랑 같은 커뮤니티 시스템과 하이텔 장터 같은 거래 시스템을 합쳐낸 게임을 만들자..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라그나로크 온라인이였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해본 기준들을 참고로 하기에, 그 개발의도나 유저경험을 비교적 빠르고 명확하게 잡아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좋게 말하면 영감을 주는 롤모델, 나쁘게 말하면 카피한 표절게임을 만들 때에나 적합하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들어서 페이스북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소셜 게임 시장이 커지다보니, 유행을 틈타 다수의 유사게임이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하기에 유의해야 할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적 메커니즘의 유사성을 띄더라도 넥슨의 페이스북용 메이플스토리 어드벤처처럼 고유의 차별화 된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새로운 게임으로써 인식되고 플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완벽하게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떠한 영감을 얻어 각각의 요소들이 조합되고 녹아드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하나의 기획 과정으로써 하이컨셉의 매쉬업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번에는 스토리를 통한 what의 정의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보자.
이 방법도 사실은 앞서 다뤘던 하이컨셉적인 접근이기는 하다. 헐리우드 영화 업계에서 많이 쓰는 하이컨셉 접근 중에는 타 영화에 대입한 영감으로 샘플링하는 방법과, 간단한 스토리 가정(what if)을 통한 방법을 많이 쓴다고 한다. 앞에서 다룬 내용이 '멈추지 않는 버스 위의 다이하드 (영화 스피드 하이컨셉)' 같은 접근이라면, 스토리를 통한 가정은 '만약 상어가 인간을 공격해 온다면? (영화 죠스 하이컨셉)' 같은 접근 방식이 된다.
추방당한 전쟁의 신이 잔혹하게 복수를 한다면? 이라는 전제 자체가 그 배경 스토리와 캐릭터가 놓여질 상황을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이미 매우 강력한 영웅적 캐릭터, 엄청 잘 싸우지만 낙오되어 그보다 더 높은 힘에 대항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더 크고 강력한 적에게 대항해 파워업해가며, 복수를 위한 여정을 풀어나간다' 등으로 정리해나가면,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높은 수위의 표현, 임팩트 있게 표현되는 액션/리액션, 사지를 찢어발기는 잔혹한 필살기 연출,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복수 여정의 몰입성 등등으로 어떤 게임의 모습과 유저경험을 만들어 가야할지 모두가 비슷한 상상을 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그 상황으로 하여금 시스템이나 컨텐츠를 설계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에 그를 기획하는데 있어 좀더 구체적인 목적성과 통일된 의도를 가지고 설계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what을 정의하는 것은 개발자나 플레이어 모두가 구체적으로 비슷한 상상을 공유하게 만들어, 그 안에서 만들어야 할 요소와 재미를 찾아가는 최초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접근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마비노기 영웅전의 이은석 디렉터가 NDC(넥슨개발자컨퍼런스) 포스트모템 강연에서 다루었던, 꿈을 꾸기 위한 1장의 컨셉 이미지와도 닮아있다. 다음의 이미지를 보자.
Uncharted : Golden Abyss ⓒ Sony
위 이미지는 PS vita로 출시된 언차티드의 최신작의 표지 이미지이다. 근래 봤던 게임 패키지 이미지 중 가장 좋아하는 컷이기도 한데, 정글 속 미지의 유적으로의 탐험, 벽 타기를 위시한 수직적 무브먼트, 적과의 총격전, 끊어지는 다리 등 동적인 환경 구성, 상황에 따라 맥락에 맞춰 인터랙션하는 링아웃 리액션 등등.. 언차티드라는 게임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유저경험의 특징들을 (게임의 스크린샷이 아님에도) 그림 한장에 모두 녹여냈다.
물론 이 이미지는 이미 언차티드란 게임이 3편까지 나온 마당에 처음부터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그림은 아니겠지만, 마비노기 영웅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어떤 게임을 만들려고 하느냐에 따라 누구라도 다른 스토리의 유저경험 스케치를 그려낸다면 그것을 비전으로 삼아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차티드의 경우 너티독 측에서 1up.com에 공개한 개발비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최초 '3인칭 액션 어드벤처'를 만들겠다는 목표 하에 사전 영상화(Pre-Visualization)을 통해 어떤 플레이가 포괄될 것인가를 영상으로써 구체화하며 접근했다. 이는 갓오브워 시리즈나 스타워즈:포스언리쉬드 등의 차별화된 액션과 연출을 추구하는 작품들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발 방법이지만 이 정도까지 하는 것은 기획자가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storytelling과 prototyping 연재에서 좀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형태로 만들고자하는 프로젝트의 what에 대한 정의를 찾았다면, 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최소화 하면서 밀접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구체적인 방향성을 갖는 비전 컨셉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how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하지만 기획이 컨셉을 만드는 단계에서 다루는 how는 '어떤 툴을 쓰자, 어떤 로직 메커니즘을 갖는다'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다음 회에서 이 how에 대한 기획적 접근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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